별 생각 없이 하던 비디오 게임이 생각보다 삶에 큰 영향을 줄 때도 있습니다.
디아블로 2는 제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큰 인기를 끌던 게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게임은 2000년대 초반 이후부터는 거의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20여 년이 지난 이후, 이 게임의 리마스터 버전이 발매되었고,
새로운 아이템이 생기고, 시스템의 변경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이 게임을 약간을 했던 적이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게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클리어한 때는
성인이 되고 난 이후, 사업을 시작한 이후였습니다. (리마스터 발매 이전)
당시에 저는 약간의 슬럼프에 빠져 있었고,
마침 연휴가 겹쳐서, 주말에 방 밖으로 나오지 않고,
이 오래된 게임을 구매하여,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처음부터 끝까지 게임을 진행하였습니다.
게임은 노멀 액트 1, 로그 캠프에서 시작됩니다.
시작하는 캐릭터에 따라, 곤봉, 칼, 완드 같은 것이 주어지고,
열심히 좀비들을 때려잡고, 계속 진행하다보면,
피투성이가 된 으스스한 카타콤에 들어가야 합니다.
독을 뿜어대는 무섭고 커다란 악마를 겨우 겨우 쓰러트리고 나면,
플레이어는 대악마 디아블로를 쫓아 전기를 내뿜는 풍뎅이들이 득실대는 사막으로 갑니다.
악마들이 득실거리는 무덥고 메마른 사막을 지나고,
미쳐버린 마법사가 날리는 얼음덩어리를 피하면서,
사막 속에 감춰진 땅에 도착하면,
냉기를 내뿜는 구더기 같은 악마와 싸워야 합니다.
구더기 악마를 해치우고,
플레이어는 불을 내뿜는 무당같은 해골과
자폭을 해버리는 해골악마
커다란 거미,
마법을 부리는 짝짝이 팔의 무시무시한 몬스터들이 도사리는
정글을 헤쳐 나가야 합니다.
이제 이 정글 깊숙히 숨어있는 악마를 해치우고 나면,
플레이어는 불지옥에 도착합니다.
불지옥에서는 불타는 영혼이라 불리는 유령이 화면에서 깜빡거리면서 전기를 내뿜고,
초록색 대장장이가 망치를 들고 때리러 달려듭니다.
겨우겨우 악마들을 해치우고 봉인을 해제하면,
디아블로가 나타나 입에서 전기와 불을 내뿜습니다.
제대로 달리지 못 하면,
저 전기를 맞고 캐릭터가 죽으며,
하드코어 모드에서는 아예 게임이 끝나버립니다.
겨우겨우 저 전기를 피해, 포션을 써가면서 디아블로를 해치우면,
갑자기 싸움을 구경하던 천사가 이상한 산에 가라고 포탈을 열어줍니다.
포탈을 타고 들어가면,
플레이어는 악마가 공격해오는 높은 산의 성채에 도착합니다.
이 산은 아주 높은 곳에 있는지
꽁꽁 얼어붙어 있고,
빙하 속에는 설인과 하피가 득실득실거리며,
성채 사람들 중에 한 명은 악마와 내통하고 있습니다.
악마를 저지하기 위해,
플레이어는 높은 산 꼭대기로 향하고,
꽁꽁 얼어붙은 추운 산 꼭대기에 겨우겨우 도착하게 됩니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산 꼭대기를 지키면서 의지를 시험하는 용사 3명과 싸움을 해야합니다.
산 정상에 있는 수호신들은
도끼를 던지거나
불타는 칼을 들고 몸을 빙글빙글 돌려대며,
커다란 무기를 든 한 수호신은 자꾸 점프를 해서 플레이어를 공격합니다.
겨우겨우, 이 신들을 황금색 동상으로 만들어주면,
악마는 이미 세상을 오염시키고 있고,
커다란 공룡들도 소환해서 플레이어를 공격합니다.
이 못된 악마를 잡고 나면,
겨우 노멀 레벨이 끝이 납니다.
이제 플레이어는 더 어려운 난이도에서 처음부터 이 과정을 반복해야 합니다.
가장 어려운 난이도는 마지막 레벨인 헬입니다.
리마스터 이전에는 말 그대로 지옥과 같은 난이도이며,
쉽지 않은 캐릭터(활 아마존, 소환 드루이드, 투척 바바리안 등)로 게임을 진행하면,
통곡을 하게 됩니다.
모든 저항은 80% 이상으로 깎여 있어서,
불이나 전기를 잘못 맞으면 캐릭터가 사망하며,
여태까지 쉽게 잡을 수 있었던 악마들도 한참을 공격해야 잡을 수 있게 됩니다.
활 아마존, 바바리안 같은 물리 공격을 하는 캐릭터들은
공격이 잘 들어가지도 않고,
한 번 죽으면 게임이 끝나는 하드코어 모드에서는
앞에 달려들어서 잘못 싸우면 순식간에 체력이 바닥나 게임이 끝나버리게 됩니다.
이제 여기서 맨땅(무자본 육성)을 하는 유저들은 노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특히 해머딘이나 소서리스보다 어려운
활 아마존, 늑대 드루이드 같은 경우는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구덩이에 들어가서 몇 날 몇 일 아이템을 갖출 때까지 사냥을 해야 합니다.
몇 시간을 하더라도, 아이템을 다 갖추는 것은 어려우며,
난이도가 어려운 캐릭터일수록 게임 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하드코어 모드에서는 잘못하다가, 게임이 끝날 수 있으며,
몇 일 밤을 새서 아이템을 모으고 나도,
화염 저항, 번개 저항, 물리 공격 내성 같은 속성이 달린 몬스터가 나타나면,
도망다니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도망다니다가 잘못하면, 게임은 끝나버립니다.
몇 일 내내 게임을 해서 아이템을 맞추고 나면,
드디어 게임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물론, 순식간에 캐릭터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아주 조심조심 게임을 진행해야 합니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마고트 동굴이라는 곳에서 스태프를 구해야 합니다.
네크로맨서와 같은 뚜벅이 캐릭터에겐 통곡의 벽으로 불리는 곳으로
앞에 전기를 내뿜는 무시무시한 벌레들이 줄지어 서있고,
이 몬스터들을 하나 하나 잡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데 아주 긴 시간이 걸립니다.
이글거리는 사막과, 무시무시한 정글, 불타는 지옥과 얼어붙은 빙하를 다시 지나고 나면
땅바닥에 포션을 잔뜩 깔아두고, 무시무시한 3형제의 시험을 또 통과해야 합니다.
3형제의 시험을 통과하고,
때려도 때려도 죽지 않는 악마를 잡고 나면,
드디어 게임을 클리어하게 됩니다.
최근에는 게임 시스템이 변경되어 예전보다 깨기 쉬워졌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리마스터 출시 이전만 해도,
이 게임을 진행하기엔 아주 어려운 캐릭터와 방식들이 존재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래된 인기 게임이다 보니
어려운 캐릭터, 혹은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게임을 클리어하는 사람 역시 존재하였습니다.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이 게임을 제대로 해보고 나니,
사업이랑 이 게임이 상당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자본으로, 혼자 힘으로 사업을 하는 것도 쉽지 않고,
가진 게 없으면, 계속 노동을 하면서 굴러다녀야 하고,
하드코어 모드처럼 한번 실패하면, 폐업을 하거나 파산을 해야 하고,
봇 프로그램 사용과 같은 치팅을 하는 사람들보다 게임 진행은 쉽지 않고,
한 순간의 실수로 회사가 망할 수 있고,
끈기가 없으면 포기할 수 밖에 없으며,
온갖 위험으로부터 도망치면서,
겨우겨우 생존해나가는 게임 캐릭터의 모습이
사업을 하는 것보다 어쩌면 어렵고 고된 삶이라고 느꼈습니다.
오히려, 이상한 방식으로 이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보다는 사업이 쉬울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생각도 못한 방식으로,
이 게임을 근성있게 클리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생은 어쩌면 저 게임보다는 쉬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놀랍게도 이 게임은 이후로도 제가 사업을 하면서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을 주고 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저도, 피투성이 지하 묘지에서 독을 뿜어대는 악마와 숨바꼭질을 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고,
돈이 불타는 메마른 사막 속에서 서류 지옥과 사투를 벌이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고,
험난한 정글에서 수많은 장애물과 사기꾼들을 피해다니고, 사투를 벌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지옥 속에서 다음 달 회사 운영 자금을 걱정할 때도 있었고,
꽁꽁 얼어붙은 산 속에서
작은 망치로 아주 단단하고 거대한 빙벽을 부수고 나가야 하는 막막함을 느낄 때도 있었습니다.
아마, 남의 돈이 아닌 자신의 돈과 인생으로 사업을 하시는 대표님들은 공유하시는 감정과 경험일 것이고,
실제로 아는 대표님 한 분도 저에게 현금 흐름이 막혔을 때는
지옥불로 만들어진 훠궈에 몸이 담겨진 기분이라는 공감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이클은 한 번 지나고 나면 나이트메어, 헬로 넘어가듯, 계속 반복되고 더 어려워집니다.
그래도, 이 게임과 비교할 때, 사업을 하는 삶의 모습은
40분 내내 때려도 때려도 죽지 않는 악마들과
무시무시한 번개를 발사하는 유령을 피해 도망다니는 게임 속의 캐릭터보다는 나았습니다.
원 코인 하드코어 모드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지만,
적어도 사업을 하면서 법인이 아닌 생명은 걸지는 않아도 되며,
사업에서 필요한 근성은
하나의 몬스터를 40분 동안 때리는 근성보다는
적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말이 안 되는 방식으로, 진득하게 앉아서, 이 게임을 클리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결국 시간과 노력은 많은 것을 해결하는 힘을 준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오늘도 약간의 앞으로 전진하는 스칼라를 만들기 위해,
벡터를 만들어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