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ep Dive

따뜻한 빵

Written by 문귀환 | 2025. 1. 10 오후 12:48:25

6년 넘는 시간 동안, 많은 국가를 출장을 다녀보며,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되새겨봅니다.

 

2022년은 돈을 퍼부어서 열심히 해외 전시에 참가하였습니다.

시작은 1월 두바이 엑스포 기간, 한국의 날이 포함된 주에 개최된 전시 참가였습니다.

난생 처음, 무더운 중동 국가에 도착한 저는 10일 동안, 전시 참가와 엑스포 관람, 미팅 및 시장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두바이의 경우, 다른 중동 국가(쿠웨이트, 사우디 아라비아)에 비해, 생활 방식에 대한 규제가 적지만,

1월임에도 불구하고, 날씨는 한 밤 중에도, 25도를 넘나들고, 무더웠습니다.

숙소비를 아끼기 위해, 시내 중심부에서 떨어진 외곽 지역에 숙소를 잡았고,

외곽 지역은 빌딩 숲이 아니라, 사막에서 날아오는 모래를 가장 먼저 뒤집어쓰는 곳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모래 바람이 불면,

창문 밖은 뿌옇게 변했고, 수영장과 방까지 모래가 날아들었습니다.

매일 호텔에서 청소를 해도, 야외 수영장 주변엔 모래가 쌓여있었고,

모래 바람이 불 때 야외를 걸으면,

입을 벌리고 숨을 쉬는 순간 더운 공기와 함께 약간의 모래를 씹을 수 있었습니다.

모래 폭풍이 심하지 않은 1월에 두바이를 방문하였음에도, 모래 바람은 꽤 자주 불었으며,

이 때문에, 아침에는 창문을 거의 열지 못 하였습니다.

 

전시가 시작되기 전, 방문했던 두바이 엑스포장에는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수 많은 국가의 사람들과 국가 전시장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이는 저를 설레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국적인 풍경도, 결국 흥미를 주기에는 잠깐이었습니다.

낮에는 전시와 미팅 그리고 무더운 날씨로 인해, 외부에서 활동하는 것이 힘들었으며,

전시가 끝나고 나서도 미팅 등을 위해 더 체류하는동안,

강남보다도 우뚝 솓은 빌딩 숲 속에서 차가 없이 걸어다니면서, 버스 등을 타기 위해 이동하다보면, 아스팔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는

한국의 무더운 여름을 연상케 하였습니다.

전시가 끝나고도 비행기를 기다리며 무려 5일 가까이나 한국에 돌아가기 위해 두바이에 남아있어야 했고,

정신적으로 지치다보니, 밤에는 술을 찾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두바이에서 술은 4성 혹은 5성급 호텔의 바나 레스토랑에서만 판매합니다.

호텔 밖에서 판매하는 술도 엄밀히는 호텔이 외부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며,

술의 가격은 한국보다 당연히 비싼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술에 까다로운 저는 일반적인 라거나 칵테일에 대한 흥미가 없었고,

쓴 맛이 강한 IPA를 마시고 싶었습니다.

한국에서 편의점에서 4캔에 1만 원에 판매하는 구스 아일랜드 IPA가 생각났지만,

이 술을 파는 곳은 두바이에서 딱 한 곳밖에 없었습니다.

 

구스 아일랜드 탭 하우스를 가기 위해 저는 30분 동안, 3만 원의 택시비를 써서,

이 곳의 영업이 끝나기 전 가까스로 이 곳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곳에서 시킨 맥주 1잔의 가격은 1만 원이 넘었지만, 이 술이라도 먹고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하였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 편의점에 널려있던 이 술을 보면서,

한국에서 1캔 당 2500원에 먹을 수 있는 이 술을 마시기 위해,

두바이에서는 시내에서 떨어진 Jumeira Village의 5성급 호텔의 바에 3만 원 어치 택시비를 쓰고 가서 한 잔 당 1만 원 이상의 돈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지금 내 상황은 그 때에 비하면 낫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재작년 방문했던 사우디 아라비아는 아예 술의 판매가 금지되어 있습니다.

22년 3월에는 전 세계 교육 박람회 중 가장 유명한 BETT Show에 참가하기 위해 출국하였습니다.

난생 처음 런던에 갔었고, 숙박비가 너무 비싸서, 방에 냉장고가 없는 3성급 호텔에서 투숙했지만,

숙박비는 1박에 20만 원이 넘었습니다.

오이스터 카드를 사용해도, 하루에 1만 원 이상의 교통비가 들었지만,

파리의 종이 지하철 티켓처럼 망가지지는 않아서, 감사한 마음으로 전시에 참가하였습니다.

돈을 아끼기 위해 전시에는 저 혼자 참가하였고,

혼자 전시에 참가하다보니 너무 바빠서, 밥은 전시가 끝나기 거의 직전까지 아예 먹지 못 하였습니다.

오후 4시 반 쯤, 겨우 사람이 줄어들어

음식을 파는 전시홀 밖 복도에 나왔는데,

이 복도에서 파는 풀드 포크 샌드위치는 냉장고에 있었고, 

샌드위치의 가격은 1개에 1만 원이 넘었습니다.

옆에 있던 차갑고 딱딱한 빵 하나와 샌드위치를 어쩔 수 없이 사서 먹었는데,

빵은 돌맹이를 씹는 것 같았고, 차가운 풀드 포크 샌드위치는 매우 짰습니다.

하지만, 무엇이라도 먹어야 전시가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있었기에, 억지로 빵을 먹었고,

한 밤 중에 전시가 끝나고, 겨우겨우 피시 앤 칩스를 먹고 방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따뜻한 빵을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부드럽고 맛있고 따뜻한 빵을 먹으면서,

런던에서 먹던 그 빵보다 맛있는 빵을 먹고 살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3년 D-Camp의 지원으로 참가한 글로벌 데모데이의 참가를 위해

저는 싱가포르에 출국하였습니다.

싱가포르에서도 돈을 아끼기 위해 호커 센터에서 밥을 먹었고,

호커 센터는 실내가 아닌 실외에 지붕만 달아놓은 야시장 같은 곳이라

땀을 뻘뻘 흘리며 밥을 먹어야 했습니다.

5월 초임에도 기온은 30도를 넘었고, 현지인들은 6월이 넘어가면 낮 기온이 40도에 육박한다는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데모 데이 참가가 끝나고 귀국 2일 전, 저는 호커 센터에서 굴 오믈렛을 먹었습니다.

오믈렛에 굴과 전분을 넣은 음식인데,

이 음식을 먹고 잠든 다음 날부터, 복통과 고열로 인해 하루 종일 호텔에 누워있다가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병원에 실려가는 환자와 같은 상태로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귀국 이후 방문한 병원에서는,

다행히 패혈증은 아니고, 심한 장염으로 보이니

항생제를 먹고, 수액을 맞고 쉬라는 의견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 오스트리아 정부의 지원을 받는 Go Austria 프로그램 참가를 위해 저는 한국을 떠나야 했습니다.

귀국 이후에는 며칠 정도 항생제를 먹으며 시간을 보냈고,

다행히, 수액의 효과로 인해 출국 전날 완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한국에서 산 굴로 직접 오이스터 오믈렛을 만들어 먹어봤는데, 탈이 나진 않았습니다.

오늘 하루가 힘들고 괴롭더라도

이 때의 기억을 돌아보며,

덥고 위생을 장담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만들어진 오믈렛이 아닌

배탈이 나지 않는 굴로 집에서 직접 오믈렛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따뜻한 빵을 먹고 싶다면 먹을 수 있고,

맥주 1캔을 먹고 싶다면 먹을 수 있고,

싱싱한 굴을 싸게 먹을 수 있는 삶에 감사하며,

조금 더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봅니다.